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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공부

아시아모델이 IMF 금융위기의 원인이 되었다?

by money-infobank 2021. 7. 30.

많은 사람들로부터 '기적'이라고까지 평가받던 한국경제가 1997년 말 갑작스럽게 전반적인 공황상태에 빠져들었다. 한국 정부는 IMF에 외환 긴급구제금융을 요청하지 않을 수 없었고, IMF는 구제금융의 조건으로 한국경제의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요구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공황의 원인은 물론 IMF의 개혁방향에 대해 여러 가지의 논란이 있었다. 

이들 논의는 크게 두 가지 견해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한 견해는 한국 경제시스템의 특수성(이른바 '아시아 모델’)이 공황의 핵심적 원인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다른 견해는 한국금융시장의 대내외적 자유화가 아시아 모델의 특수성을 해체함으로써 공황을 야기했다고 주장한다. 이 전혀 다른 두 견해는 당연하게도 한국경제시스템의 개혁방향에 대해서도 완전히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전자의 견해는 IMF나 신고전학파가 제시하는 것이고, 후자의 견해는 주로 미국의 좌파 케인스주의자가 제시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이들 두 견해를 검토하고, 공황의 원인에 대해 새로운 견해를 제시하고자 한다. 결론을 미리 말하면, 1997년 말의 공황은 주기적 요소와 제도적 요소의 결합으로부터 발생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한국경 제가 ‘자본주의' 경제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주기적 순환을 겪을 수밖에 없었는데, 주기적 호황과 불황이 한국경제의 그 당시의 특수한 제도적 요소에 의해 각각 증폭되고 악화되었다는 것이다. 

아시아 모델과 경제공황 


대부분의 논자들은 한국경제가 정부 주도의 수출지향적 발전전략에 의해 매우 높은 성장을 이루었다는 데 동의한다. 흔히 말하는 아시아 모델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상호 연관된 특성을 갖고 있다. 첫째, 산업부문은 투자자금을 채권이나 주식의 발행보다는 주로 은행으로부터 차입을 통해 조달한다. 다시 말해 아시아 모델은 증권시장에 의거한 시스템이 아니라 은행에 의거한 시스템이다.

둘째, 정부가 성장의 전략산업을 선정하고 그 부문에 대해 조세나 금융 면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한다. 다시 말해 정부가 ‘산업정책’(industrial policy)을 강력하게 추진한다. 셋째, 이 과정에서 정부 · 은행·기업은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고, 정부는 이 관계를 주도하고 조정한다. 한국공황의 원인과 관련해, 아시아 모델은 논란의 핵심적인 대상이 되었는데, 한 그룹은 이 아시아 모델이 내재적으로 큰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공황이 발생했다고 주장하며(우리는 이를 '반 - 아시아 모델 견해' 라고 부를 것이다), 

다른 한 그룹은 이 아시아 모델이 경제의 성장과 안정을 보장하고 있었는데, IMF와 미국 및 초국적자본이 아시아 모델을 파괴함으로써 현재의 공황이 발생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우리는 이를 ‘친 아시아 모델 견해'라고 부를 것이다). 

아시아 경제 모델이 금융위기를 낳았다?

이들은 아시아 모델에 내재하는 도덕적 해이(moral hazard)와 연고자본주의(crony capitalism)가 공황 발생의 주된 요소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한국공황의 원인으로 '도덕적 해이'를 강조하고 있는데, 한국 등 아시아의 경우 기업의 투자 실패에 대해 정부가 금융지원 등의 수단을 통해 대부분 구제해 주기 때문에, 기업이나 은행은 위험을 고려하지 않고 무모한 투자나 대출을 함으로써 공황을 야기했다고 주장한다. 또한 이들은 '연고자본주의'를 공황의 주된 원인으로 지적하는데, 정부·기업 · 은행 사이의 밀접한 관계로 말미암아 대부와 투자가 사업의 경제적 수익성보다는 정실과 뇌물수수에 의거해 결정됨으로써 부실대출, 채무누적 및 금융위기를 낳았 다는 것이다. 이러한 두 주장은 현재의 공황을 설명하기에는 이론적으로나 실증적으로 적절하지 못하다.

첫째, 이들은 도덕적 해이나 연고자본주의가 아시아 모델에 내재하는 특성이라고 보고 있는데, 그렇다면 어떻게 한국경제가 지난 30년 동안 급속한 성장을 달성할 수 있었겠는가? 한국에서 도덕적 해이는 사실 큰 문제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정부는 신용을 일정한 우선순위에 의해 배분했고, 그것의 사용을 감독했으며, 비효율적 기업에 대해서는 새로운 신용을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가 과잉설비와 투자 실패가 발생할 때마다 산업을 재편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때마다 투자에 실패한 기업은 건전한 기업에 흡수 통합되게 하였으며, 정부가 구제금융을 제공할 때에도 해당기업은 은행으로 경영권을 대부분 이전하지 않으면 안되었기 때문이다. 

연고자본주의는 소수의 대기업에 은행대출과 경제력을 집중시키는 결과를 낳았다고 비난할 수도 있지만, 그것이 준내부조직(quasi-internal Organication)의 역할을 함으로써 시장메커니즘보다 더 효율적으로 수출목표와 고도성장을 이루는 데 기여했다고 볼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정부에 의한 선도산업부문의 선정과 정책금융의 지원, 그리고 대기업에 대한 각종 특혜가 이른바 경제기적을 낳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점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물론 이 기적의 뒤에는 노동자와 농민에 대한 체계적이고 극심한 착취가 존재했으며, 연고자본주의가 이러한 착취를 극대화하는 효과적인 시스템이었다는 점이 강조되어야 하지만, 연고자본주의 그 자체가 공황을 넣는 메커니즘을 갖고 있었다고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둘째, 기업의 과잉투자의 은행의 과잉대출은 도덕적 해이와 연고자본주의가 놓은 독특한 현상이 아니라, 자본주의 경제에 내재하는 일반적인 현상이라는 검이다. 경기상승기에는 미래에 대한 낙관적 기대로 말미암아 기업은 경쟁적으로 투자를 확대하며, 은행 역시 경쟁적으로 대출을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세계의 모든 자본주의국에서는 주기적으로 이와 같은 과잉투자의 과잉대출이 발생했으며, 이것이 공황을 통해 정리되곤 했다. 

1977년 말의 의환위기나 의채위기는 국제금융자본가들의 책임도 컸다. 왜냐하면 그들은 한국경제가 앞으로도 고도성장을 계속하리라고 기대해, 한국의 기업과 금융기관에 너무나 큰 대부와 투자를 행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의 과잉투자와 과잉부채를 한국기업이나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나 연고자본주의로 설명하는 것은 국제금융자본가들의 잘못된 투자결정을 은폐하려는 의도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 사실상 IMF가 멕시코 등 외채과잉국의 경제에 개입해 국제금융자본가들에게 원리금의 상환을 보장했기 때문에, 국제금융자본가들이 오히려 도덕적 해이에 빠져 한국에 대해 무모한 투자와 대부를 행했다고 비판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현실적으로 한국에서 아시아 모델의 특성은 1997년 말의 공황 이전에 이미 상당히 시라지고 있있기 때문에, 반 아시아 모델의 견해는 실증적으로도 적절하지 못하다. 금융자유화로 말미암아 정부가 신용의 흐름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 감소하고 있었고, 기업이 은행에 의존하기보다는 점차로 채권시장이나 주식시장에 의존하게 되었으며, 정부가 사적 투자를 규제하거나 조정할 능력과 의지를 잃고 있었기 때문이다. 198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금융자유화'는 1990년대 중반 이전에 이미 거의 완결된 상태였으며, 기업의 은행에 대한 의존은 점차로 감소해 1987년부터 ‘비은행’ 금융기관(종합금융회사, 증권회사, 보험회사, 투자신탁, 단자회사 등)의 여수신 비중이 은행보다 더 커진 것은 물론, 기업의 자금조달구조도 198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은행차입보다 주식·채권의 발행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여기에 더해, 정부는 한보에게 제철공장을, 그리고 삼성에게 자동차공장을 허가하는 등 1990년대 초부터 '산업정책'은 사실상 폐지되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반-아시아 모델 견해는 경제공황이 도덕적 해이나 연고자본주의 없이도 발생한다는 점에서 이론적으로 타당하지 않고, 한국에서는 공황 이전에 이미 아시아 모델이 크게 와해되고 있었다는 점에서 실증적 으로도 타당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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