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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공부

IMF의 원인을 찾아서 신자유주의가 만들었다?

by money-infobank 2021. 7. 30.

1990년대 중후반 아시아의 대공황의 이유가 정부주도형의 경제모델인 아시아모델 때문이라는 주장들이 있다.

 

아시아모델이 IMF 금융위기의 원인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기적'이라고까지 평가받던 한국경제가 1997년 말 갑작스럽게 전반적인 공황상태에 빠져들었다. 한국 정부는 IMF에 외환 긴급구제금융을 요청하지 않을 수 없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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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반대의 의견도 있다. 신자유주의 도입이 한국의 IMF를 포함하여 아시아 금융위기의 원인이었다는 것이다.  좌파 케인스주의자와 국가개입론자는 아시아 모델은 한국경제의 안정된 고도성장을 달성하는 데 핵심적 요소였으며, 따라서 한국의 경제공황은 이 모델의 약화 또는 와해에서 그 원인을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본시장 개방이 아시아 공황을 만들었다는 주장

이들에 따르면, 아시아 모델이 와해된 것은 1990년대 중반에 완성된 금융부문의 자유화에 주로 기인한다. 금융자유화는 국내 금융시스템의 규제 완화와 해외투자자에 대한 자본시장의 개방으로 진행되었다. 

금융자유화가 신용흐름과 사적 투자에 대한 정부의 통제 · 조정 능력을 제거했으며, 그 결과 과잉투자, 투기적 투자, 그리고 과도한 대외 부채가 발생하고, 이것이 현재의 공황을 유발했다는 것이다.

IMF, OECD, 미국 정부의 요구와, 서방의 은행과 기업들의 요구 때문에, 한국 정부는 금융부문에 대한 규제를 급진적으로 해제했는데, 이로 말미암아 기업의 해외차입에 대한 통제가 제거되거나 약화되었으며, 기업들의 차입과 투자에 대한 조정이 폐지되었고, 또한 은행에 대한 감독도 소홀해졌기 때문에, 공황이 발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금융자유화가 기업의 부채비율을 증가시키고,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을 증대시키는 데 기여했다는 점은 인정할 수 있다. 또한 자본자유화는 거액의 단기해외자본의 급속한 유출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에 외환위기를 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도 동의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견해는 정부개입이 한국자본주의의 경기순환을 효과적으로 제어할 수 있다고 과대 평가하고 있으며, 또한 아시아 모델의 내재적 약점을 과소평가하고 있다. 

신자유주의가 금융위기의 근본 원인은 아니다. 

첫째, 아시아 모델이 한국의 경제기적에 기여했다고 할지라도, 공황 없는 안정적 성장을 항상 보장하는 것은 아니었다. 한국의 경우 실제로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후반, 그리고 1980년대 후반에 각각 심각한 공황을 경험했으며, 경기변동도 심했다.

더욱이 아시아 모델이라 하더라도, 한국과 같은 수출주도형의 소국(小國)개방경제에서는 경제의 성장과 안정은 해외여건의 변화로부터 매우 큰 영향을 받기 때문에, 정부의 통제와 조정을 통해 경제의 안정적 성장을 달성하기에는 큰 한계가 있다. 

둘째, 금융자유화가 경제의 안정을 저해하고, 자본자유화가 국제적 투기자본의 급속한 유입과 유출을 통해 외환수급의 불안정성을 강화시켰다할지라도, 이러한 자유화는 여러 가지의 내적 · 외적 요인에 의해 피할 수 없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국내에서는, 정부 관리들이나 재벌이나 일반시민까지 정부 개입의 축소를 요구했으며, 국외에서는 미국 정부나 국제기구들이 무역·외환 · 자본거래의 자유화를 계속 요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아시아 모델은 성장전략으로서는 이미 한계에 달했으며, 따라서 그것을 그대로 유지했더라면 공황을 피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환상이다.

오히려, 아시아 모델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축적체제가 자리잡기 전에 공황이 발생했으며, 공황을 경과하는 과정에서 노동자, 회사, 정부 사이의 치열한 투쟁을 통해 새로운 축적체제가 확립되었다.

 
셋째, 이들의 아시아 경제모델 예찬은 아시아 경제모델이 독재 · 특혜·부패와 분리될 수 없다고 믿는 한국 국민의 정서와 크게 모순된다. 나치체제가 독일경제의 위기를 일시적으로 극복하는 데 성공했다고 해서, 누가 나치체제를 찬양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한국 정부는 국제 경쟁력을 높여 수출을 증대시키기 위해, 재벌에게 금융·세제상의 지원을 집중시켰을 뿐 아니라, 노동자의 노동조합 결성을 금지했으며,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재벌들은 정부의 각종 특혜와 보호에 힘입어 독점적 기업으로 성장했으며, 은행여신을 독점하고, 중소기업의 이윤을 수탈했다.

결국, 아시아 모델이 경제적 기적을 이룩한 ‘진정한 이유는, 세계시장의 변화와 같은 외부요인을 제외한다면, 이 모델이 자본가들로 하여금 직접적 생산자들(노동자와 농민)을 무자비하게 착취하는 것, 소수의 대자본으로 하여금 중소자본을 수탈해 모든 잉여가치를 자기에게 집중시키는 것, 그리고 모든 이용가능한 대내외 자원을 특정의 성장산업에 집중시키는 것에 아주 효과적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실제로 아시아 모델의 핵심은 정부와 독점적 대자본의 결탁이었다. 우리가 1969-72년, 1979-81년, 1984-88년의 정부의 산업구조조정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정부는 기업의 과잉설비를 해소하고 금융적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재벌들에게 특별융자, 채무상환 중단과 같은 특혜를 주어 부실기업의 인수와 합병을 유도했으며, 그 부담은 은행과 정부, 궁극적으 로는 국민들이 졌다.

넷째, 이들은 해외자본의 급격한 유출이 국내의 금융공황을 유발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사실은 대기업들의 파산과 금융기관의 부실여신 증대로 말미암은 국내의 금융공황 때문에 해외자본이 급속하게 유출되었던 것이다. 해외차입의 만기갱신율이 크게 감소한 것은 1997년 11월 이후이며, 자본순유입이 (-)로 돌아선 것도 1997년 말에 이르러서다.

따라서 자본유출입에 관한 규제를 철폐한 것이 해외자본의 급격한 유출을 야기했고, 이로 말미암아 외환위기가 발생했다고 보는 것은 사실과 맞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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