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먼데이란?
블랙먼데이란 1987년 10월의 세계적인 주식시장 공황을 이야기한다. 뉴욕 증권시장의 다우 공업지수는 1987년 10월 19일 하루 동안 22.6%나 폭락했으며, 10월 14 ~ 19일까지의 나흘 거래일 동안 31.9%나 폭락해 1929년 10월의 주식 공황을 훨씬 능가했다.
결국 미국의 상장주식의 시가 총액이 나흘 동안에 2조 8,000억 달러에서 1조 9,000억 달러로 감소했으며, 그만큼 주식소유자의 재산이 감소했다. 이러한 뉴욕 증권시장의 격변에 영향을 받아 런던과 도쿄 증권시장의 주가도 나흘 동안 각각 22%와 18% 폭락했으며, 홍콩의 증권시장은 10월 20-26일까지 폐쇄되었다.
이러한 주식가격의 폭락은 주식 소유자들이 앞다투어 주식을 팔려고 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특히 기관투자자(증권회사, 은행, 투자신탁, 보험회사, 연금기금, 각종 펀드)가 주식의 대부분을 소유하고 있으며, 주식 가격에 영향을 미칠 요인들에 관한 정보가 세계적인 규모로 조직적이고 신속하게 수집·전파되고 있는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는, 거대한 기관투자자들
이 거의 동시에 주식을 투매한다면, 주식가격이 폭락할 수밖에 없다.
또한 기관투자자들이 수익성을 확보하기 위해 각국 증권시장에 분산 투자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 증권시장의 주가 폭락은 자연히 런던과 도쿄시장에서도 주가를 폭락시킬 수 있다.
블랙먼데이의 원인
1987년 10월 19일 뉴욕증권시장의 주가 폭락은 미국 재무부 장관이 금리는 인상하고 달러화는 계속 약세를 유지하겠다고 말했기 때문에 일어났다고 한다. 금리가 오르면, 주가는, 다른 사정에 변화가 없는 한, 하락하게 마련이며, 달러화의 대외가치가 하락한다면 누구도 달러로 표시된 증권을 소유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미국 재무부 장관의 발언이 있자마자 거대한 기관 투자지들(특히 일본 증권회사들)이 뉴욕시장에서 주식을 대규모로 팔기 시작했고, 기타의 투자자들도 주가의 하락 경향에 놀라 주식을 투매하기 시작했다. 이 결과가 격렬한 주식 공황이었다.
그런데 각국 정부는 주식공황을 맞아 여러 가지의 긴급조치들을 취함으로써 주식 공황이 초래할 각종의 위험을 피하려고 노력했다. 예를 들면,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은행은 금융기관의 자금 사정 악화를 방지하기 위해 금융기관에게 자금을 무제한 공급하겠다고 선언했고, 증권회사에게 자금을 지원해 주식을 매입하게 함으로써 주가의 반등을 시도했으며, 또한 주요 은행의 금리를 인하하도록 요청했다.
금융기관에게 자금을 무제한 공급하겠다는 것은, 주가 폭락이 야기할지도 모를 금융공황(신용공황과 은행 공황)과 산업 공황을 예방하려는 조치다. 금융기관이 주가 폭락으로 큰 손해를 보았다면, 첫째로 예금자의 예금 인출 소동으로 금융기관이 도산하는 은행 공황이 일어나거나, 둘째로 대출 재원이 모자라 대출을 중단하거나 대출을 회수함으로써 신용공황을 야기할 것이고, 뒤이어 다수의 기업들을 도산시키는 산업 공황을 야기할 것이다.
만약 산업기업이 주가 폭락으로 큰 손실을 보았다면, 산업 기업은 은행 부채를 상환하기 어려워 도산할 수밖에 없다. 결국 선진국 정부는 관리 통화 제도의 이점을 살려 주식 공황의 파급을 약화시키려고 노력한 것이다.
미국 재무부장관의 발언으로 주식 공황이 발생했다는 이야기는 주식 공황의 '방아쇠'에 관한 것이다. 방아쇠를 당기지 않으면 총알이 폭발하지 않지만, 총알을 넣지 않고 아무리 방아쇠를 당겨 봐도 폭발은 일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주식 공황이 발생할 수 있는 여건 또는 환경이 이미 조성되어 있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이미 조성되어 있던 근원 이유
먼저 미국경제의 동항을 살펴보자. 미국의 레이건 정부는 고소득층에 대한 조세 삭감과 국방비 지출 증대로 막대한 재정적자를 겪고 있었는데, 이 재정적자는 인플레이 선을 유발해 금리 인상을 촉발할 위험성을 지니고 있었다. 인플레이선은 주시의 실질가치를 감소시키기 때문에, 그리고 금리 인상은 주식 소유보다 은행 예금을 더욱 유리하게 하기 때문에, 인플레이션과 금리 인상은 주식 소유의 매력을 감소시킨다.
또한 미국경제는 대규모의 무역적자를 계속 겪고 있었다. 무역적자의 확대는 달러화의 대외가치를 하락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해, 달러로 표시된 주식을 소유하는 것을 불리하게 한다. 물론 외국자본을 도입하면, 무역적자를 메울 수 있을 뿐 아니라 국제수지의 종합 계정을 흑자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달러화의 대외가치를 유지할 수 있다.
사실상 1985년 말까지 일본과 서독의 금융기관들이 미국의 국채(재무부증권)와 회사채·주식을 대량 매입함으로써, 미국 달러화는 그 시세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달러화의 강세는 미국 산업의 국제경쟁력을 약화시켜 미국 산업 전체를 쇠
외의 길로 몰고 갔다. 이 때문에 미국 정부는 1986년 이후 달러화의 대외 가치 하락을 방치했다.
이렇게 볼 때 1987년 10월의 주식 공황의 밑바탕에는 미국의 쌍둥이 적자(재정적자와 무역적자)라는 요인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대규모 재정적자가 생긴 이유는, 기업과 고소득층에 대한 조세부담의 경감으로 재정수입은 감소했지만, 재정지출은 사회복지비의 무자비한 축소에도 불구하고 국방 관련 비용의 확대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미국 정부는 군사 관련 산업(예컨대 항공우주산업, 컴퓨터 산업, 무기산업, 스타워즈 계획)을 중심으로 산업의 국제경쟁력을 향상하려고 하기 때문에, 재정적자를 축소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1990년대 클린턴(B, Clinton) 대통령 시절 한편으로 국방관련 지출의 삭감과 다른 한편으로 호황에 따른 재정수입의 증가로 재정적자가 해소됐다. 그리고 미국의 무역적자는 주로 첨단과학기술 분야를 제외한 거의 모든 산업에서 국제경쟁력을 상실하고 있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일본과 서독, 그리고 신흥공업국들은 미국의 해외시장은 물론 국내시장까지 빼앗고 있었다. 물론 보호무역적 행정조치의 강화와 외국시장의 개방 요구로 어느 정도 무역적자를 감축시킬 수 있겠지만, 미국산업의 국제경쟁력이 상승하지 않는 한, 무역적자를 해소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2000년 이래 매년 4,000-5,000억 달러의 대규모 무역적자를 기록했다.
'경제공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IMF의 원인을 찾아서 신자유주의가 만들었다? (0) | 2021.07.30 |
---|---|
아시아모델이 IMF 금융위기의 원인이 되었다? (0) | 2021.07.30 |
오일쇼크의 원인과 영향 (0) | 2021.07.29 |
20세기 세계 경제사 총정리 (0) | 2021.07.29 |
금융이란 얼마나 불안정한가 (0) | 2021.07.2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