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의 원인 한국 공황의 제도적 성격
1990년대 중반 이후의 한국경제의 제도적 요소들은 앞서 살펴본 주기적 경기순환과 공황을 증폭시켜 외환위기와 경제 전체의 파국을 초래했다.
기업의 과도한 국내부채
먼저 그 당시 기업이 그토록 큰 규모로 차입해 투자할 수 있었던 제도적 환경을 살펴보자. 첫째, 아시아 모델의 특성인 은행과 기업 사이의 밀착관계가 특히 대기업의 투자계획에 대해 은행이 별다른 의심 없이 거액의 자금을 대출해 주도록 만들었다. 물론 호황이어서 은행도 대기업과 마찬가지로 장래에 대한 기대감에 차 있었으며, 대기업에 대한 정부의 여신한도 규제에도 불구하고 고객을 잃지 않기 위해 한도를 피할 수 있는 교묘한 방법을 찾아 대출을 증가시키곤 했다.
둘째, 재벌들은 이미 높은 부채비율을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자금을 차입하기 위해 정부에 대해 국내 금융시장에 대한 규제를 완화할 것과 해외자본의 유입을 자유화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 결과 1980년대 초부터 시작된 금융자유화는 1990년 중반에 거의 완성되었다. 특히 1994년과 1996년에 24개의 종합금융회사가 이전의 투자금융회사로부터 전환했거나 새롭게 신설되었는데, 이들은 국내외의 영업활동에서 정부의 통제나 규제를 거의 받지 않았다. 더욱이 이들은 대부분 재벌들에 의해 소유되었는데, 그 결과 재벌기업들은 아무런 간섭 없이 이들로부터 대규모의 자금을 빌릴 수 있었다. 이것이 재벌의 부채규모를 비정상적으로 크게 한 또 하나의 요인이었다.
셋째, 해외자본의 단기차입에 대한 자유화로 말미암아 금융기관이나 기업은 해외로부터 단기자금을 정부의 규제 없이 차입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해외의 투자자나 외국은행들은 한국경제의 발전에 대한 기대로 한국에대출하는 데 매우 적극적이었으며, 이에 따라 해외업무에 경험이 없는 신설 종합금융회사까지도 거대한 자금을 해외로부터 차입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결과 해외부채는 급속히 증가해, 총부채가 1993년 말의 439억 달러에서 1996년 말에는 1,635억 달러로 무려 세 배 이상이나 증가했다. 여기에 더해 정부는 장기 해외자본보다는 단기 해외자본의 차입을 더욱 장려함으로써 단기차입의 비중을 매우 높게 만들었다. 실제로 당시의 단기차입비중은 전체의 55%에 달할 정도였다.
넷째, 금융자유화가 진행하면서 정부의 금융기관에 대한 통제와 감독의권한이 현저히 감소했다. 그리고 상업은행들은 전통적으로 정부의 지시를 따르고 있었기 때문에, 대출을 심사하거나 대출을 사후 감독할 능력을 향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더욱이 종합금융회사는 표준적인 금융업무에 대한 경험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다. 결국 금융자유화는 금융활동에 대한 정부의 감독은 물론 금융기관 자신의 대출심사와 사후관리 없이 진행되었으며, 이리하여 무모한 투자계획에 따른 기업의 도산 가능성과 부실대출의 증가에 따른 금융기관의 파산 가능성이 크게 증가한 것이다. 이와 같이 재벌의 투지 결정의 자율성 증가, 대내외적 금융자유화, 정부의 실물부문과 금융부문에 대한 조정과 감독의 권한 약화 등과 같은 그 당시의 특수한 제도적 요소들이 호황기의 일반적인 과잉투자나 과잉채무 이상으로 1990년대 중반의 투자나 부채를 증가시켰으며, 격렬한 산업 공황과 금융공황의 발생을 예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과도한 금융자유화
다른 한편으로 한국의 산업·금융 공황을 외환위기와 경제 전체의 파국으로 이끌었던 그 당시의 제도적 요소는 무엇이었는가? 한국의 대기업들이 파산상태에 빠지고, 여러 금융기관들이 대규모의 부실채권을 안고있을 때, 해외투자자들이 새로운 대부는 물론, 기존의 대부를 연장해 주지 않은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고, 이에 따라 한국의 채무자들은 만기일에 해외채무를 상환하기가 매우 어려워졌다.
그러나 이러한 일반적인 외환위기는 총대외부채 중 단기부채의 비중이 너무 높았다는 사실과, 정부가 환율을 유지하기 위해 1997년에 대규모의 외환보유고를 사용했다는 사실에 의해 크게 악화되었다. 정부는 기업과 은행이 채무상환 만기일에 외채를 갚을 수 없게 되자, 1997년 11월 21일 IMF에 특별 구제금융을 요청했으며, 12월 3일에 승인받았다.
한국이 IMF경제체제에 들어간 이유
결론적으로, 1997년 말의 한국 공황은 자본주의 경제 그 자체의 본성인 주기적 순환의 한 과정으로 전개되었으며, 당시의 한국경제가 가지고 있었던 제도적 특성들이 이 공황을 더욱더 악화시켜 외환위기와 경제적 파국으로까지 몰고 갔던 것이다.
한국의 경제공황은 연고자본주의나 도덕적 해이와 같은 한국 자본주의의 특수성에 의해 야기된 것도 아니며, 또 금융자유화에 따른 아시아 모델의 해체에서 온 것도 아니다.
개인적인 의견은 1997년 말의 공황이 자본주의 경제에 내재하는 정상적인 주기적 공황이라고 이해한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과잉투자, 과도한 차입과 대출, 이윤율 저하, 금융취약성, 산업공황과 금융공황은 주기적으로 발생한다.
기업의 높은 부채비율, 대내외적 금융자유화, 산업과 금융에 대한 정부 통제력의 약화와 같은 제도적 요소들도 공황 발생에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이들은 주기적 힘을 확대시키고 약화시킨 2차 요소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