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공부

한국 재벌 성장과정 6단계

money-infobank 2021. 8. 4. 12:40

한국 재벌이 어떻게 돈을 벌어 지금과 같은 규모로 성장했을까? 이 역사를 알고 나면 한국 재벌이 자신들의 권력과 자본이 국민들의 피땀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연대기에 따라 간단히 살펴보자. 

1. 일본 소유의 재산을 물려받다 

첫째, 일본이 패전함으로써 일본 소유(일본 정부, 개인과 법인을 포함)의 재산이 모두 한국을 점령한 미군정에게 넘어갔고, 이 귀속재산(또는 적산)은 1948-57년간 거의 무상으로 매각되었다. 따라서 미군정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거나 이승만 정권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던 사람들이 귀속재산을 매입해 당장 대기업가로 등장했다. 다시 말해 기업이 피나는 경쟁을 통해 자본을 축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재벌이 탄생한 것이다. 해방 직후에는 일본 소유의 산업시설이 전부였기 때문에, 이 산업시설을 장악하면 자연히 독점적 지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

2. 미국 원조 달러를 배정받다

둘째, 1950년대에는 재벌은 미국의 원조 물자와 원조 달러를 배정받아 자본을 축적했다. 공업용 원료가 부족했기 때문에 미국이 원조로 제공하는 밀·원당 · 원면은 제분업 · 제당업·방직업의 주된 원료였고, 그 당시에는 이 3백산업(세 가지의 흰 산업)이 주된 산업이었다. 또한 그 당시 달러가 부족했기 때문에 원조 달러를 배정받는 기업은 횡재를 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 달러로 국내에 부족한 상품을 수입해 폭리를 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본을 축적하는 방법도 역시 경쟁을 통한 기술혁신과는 전혀 관계가 없고 정치권과의 유착에 달려 있었다.

3.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서 수혜를 받다

셋째, 1962년부터 시작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서 정부는 재벌의 경영능력과 자금조달 능력을 이용하기 위해 재벌들에게 핵심 투자부문을 맡겼다. 핵심 투자부문을 맡은 재벌은 이제 정부의 보증에 의해 외국자본을 차입하고, 국내 금융기관으로부터 낮은 금리의 자금을 차입할 수 있었다. 또한 정부는 수출증대를 경제정책의 제1 목표로 설정했기 때문에, 수출업체는 거대한 지원을 받았다. 예컨대 1969년 일반은행의 대출금리는 24.5%(시중의 사채금리는 50%)였는데, 수출금융의 금리는 6%에 지나지 않았으며, 이 밖에도 수출업자는 각종의 조세를 감면받았고, 수출용 원자재의 수입에 대한 관세, 그리고 전기료·철도 사용료 등도 감면받았다. 결국 대외 지향적 공업화 과정에서 재벌은 값싼 외국자본과 국내 금융을 마음대로 사용하면서 자본을 축적했는데, 이러한 자본축적도 재벌 스스로의 역량에 의해서가 아니라 개발 국가의 적극적인 지원에 의한 것이었다.

4. 국토 부동산 개발에서 돈을 벌다

넷째, 재벌은 아파트 건설이나 토지투기를 통해 막대한 이윤을 획득했다. 정부는 도로 · 지하철 · 항만 · 학교·신도시 등을 건설해야 했고, 시민들도 소득이 증가해 새로운 주거방식을 추구하고 있었는데, 재벌은 정부의 지원으로 풍부한 자금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토지에 투기하거나 아파트 건설을 통해 막대한 이윤을 얻은 것이다. 이 과정에서 1977-78년, 그리고 1987-89년에는 토지 가격이 폭등하고 주택 가격과 전세 가격도 폭등했다. 그 뒤 노태우 정부는 토지 가격과 아파트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 1988-93년에 200만 호의 아파트를 건설한 것이다. 

5. 중화학공업으로 돈을 벌다

다섯째, 1970년대 중반 이후 정부는 중화학공업화를 추진했는데, 정부는 중화학공업 투자자로 선정된 재벌에게 외국차관과 국내 금융에서 특혜를 주었을 뿐 아니라 중화학 공산품의 수입 제한을 통해 해외의 경쟁을 막아 주었다. 이 과정에서 외국차관이 지나치게 증가해 '외채 망국론'이 등장했고, 부실기업도 증가했다. 이렇게 된 것은 외국차관과 국내은행 대출의 금리가 시중의 사채금리에 비해 너무나 낮았으므로 기업들은 될수록 많은 외국차관과 은행 대출을 받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기업은 망해도 기업가는 망하지 않는다”는 말이 유행했다.

6. 부실기업 정리 과정에서 혜택을 받다

여섯째, 재벌은 부실기업 정리 과정에서 큰 혜택을 받았다.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까지는 부실한 차관 기업을 정리했고, 1979-80년에는 부실 중화학공업을 구조 조정했으며, 1985-88년에는 해외건설과 해운업을 비롯해 조선·합판·섬유·제지 · 종합상사 등을 정리했다. 그런데 정부는 부실기업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재벌에게 부실기업을 인수·합병하기를 권장했으며, 인수·합병하는 대가로 부실기업의 채무 탕감과 부실기업의 합리화를 위한 금융지원을 실시했는데, 이것은 은행을 희생해 재벌에게 특혜를 주는 것이었다. 은행은 큰 손실을 입지 않을 수 없었으므로, 정부는 한국은행으로 하여금 이자율이 매우 낮은 특별 금융을 은행에게 제공하도록 했다.

7. 문어발식 확장으로 돈을 벌다

일곱째, 재벌은 계열기업 사이의 ‘순환출자'를 통해 아무런 자본도 없이 새로운 기업을 설립해 문어발식으로 확장했다. 기존의 A기업이 새로 설립될 B기업의 주식을 매입함으로써 B기업을 설립하고, 그 뒤 B기업은 A기업의 지급보증에 의해 은행 대출을 받아 영업을 확대한다. 그런데 현행 법에는 B가 다시 A의 주식을 매입하는 것은 ‘상호출자로서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B가 C기업의 주식을 매입하고, C는 기업의 주식을 매입하면, B기업에 출자한 돈이 다시 A기업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순환출자'다. 돈의 흐름은 A→B→C→A가 된다.

결론

이처럼 재벌은 기술혁신을 통해 자본을 축적하기보다는 정경유착, 부동산 투기, 문어발 확장 등을 통해 자본을 축적했다. 그러나 개방과 자유화라는 세계적인 조류에서 재벌은 업종전문화를 통해 무한경쟁을 이어나가지 않을 수 없었다. 노동집약적인 산업에서는 중국과 동남아 나라에게 뒤떨어지고, 기술집약적인 산업에서는 일본·독일·미국·영국 등선진국에게 뒤떨어지기 때문에, 재벌은 탈출구를 마련하고자 반도체·자동차·철강·석유화학 · 정보통신 등의 분야에 막대한 자금(외자와 내자)을 투자했는데, 세계시장이 기대만큼 확대되지 않아 제품을 제값에 대량 판매할 수 없게 되어 재벌은 채무상환에 허덕이게 되었다. 이것 이결국 1997년 12월의 외환위기로 폭발한 것이다.